반딧불이
반딧불이
할머니 집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면 늘 반딧불이를 본다.
안타까운건 카메라로는 안(못)찍힌다는 것이다.
지금 시간은 9시쯤인데 용당은 자정처럼 고요하다. 사실 가로등도 별로 없고 온통 밭뿐이라 온통 새카맣다.
반딧불이 못지않게 별도 선명하게 잘 보이지만 눈으로 보는 걸로 만족.
오늘 식당에서 선반 을 청소하고 정신없이 할머니 집으로 가기위해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부터는 왠지 관광객 모드로 돌아가 사진도 찍고 풍경도 보며 용당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몇 달 전 친구들과 스쿠터 여행을 했던 바다와 식당들이 있어서 또 추억에 잠겼다. 지도리가 말하길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십년 전 쯤에 할머니가 잘 걸어다닐 수 있을 적에는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왔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한테 줄 호박, 마늘, 쌀 등은 변함이 없다. 그때는 제주시에서 용당까지 거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아니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근데 이제와서 버스를 타고 용당에 가보니 알 것도 같다.
할머니도 기사아저씨한테
"용당리에서 내려줍서양" 이라고 했겠지.
버스에서 내려서 할머니 집으로 걸어가는데 햇볕이 너무 좋아서 사진을 막 찍었다. 근데 지나가던 차가 1474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물어보길래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혹시 1474 게스트하우스에 가는것이냐 묻길래 아니라했다.
산책을하며 1474 게스트하우스를 봤더니 밭을 사이에두고 옆집이었다.
할머니는 밭에 품앗이를 하러가서 없었다.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나는 작업복에 신경을 많이쓴다.) 기념사진을 찍은 뒤 본격적으로 할머니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자기가 독거 노인이라는것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집이 엉망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 꼬라지는 다 우리탓.
할머니 물건은 함부로 버릴 수 없고 그 위치도 바꿀 수 없기에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어쨌든 청소는 나름 맘에 들었고 할머니도 맘에 들어했다.
한가지 의견이 안맞았다면 침대에 깔았던 낡은 이불을 버리자, 말자, 였는데 결국은 할머니 승.
갑자기 생각났는데, 사실 할머니는 이쁜 새이불을 고모, 엄마에게 많이 받았지만 아끼며 쓰질 않는다. 그리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나를 위해 자신이 받은 예쁜 여름 이불을 나에게 줬다. 나는 그 이불을 잠깐 이모에게 빌려주기위해 그것을 가지고 지하철에 탔다가 두고 내린적이 있다. 처음엔 찾기도 귀찮고 그래서 내버려뒀다가. 하루 뒤에 도저히 할머니가 생각나서 결국 충무로역에 찾으러 갔다. 미안 할머니.
할머니는 요즘도 남의 밭에 품앗이를 하러간다. 내일도 새벽5시에 밭 일을 하러 나간다.
내가 미취학아동이었을때,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할머니집에서 몇 달을 지냈다. 그 때도 할머니는 품앗이를 하러 새벽5시에 나갔다. 매일 아침 눈을뜨면 할머니는 없었고 그저 아침으로 먹으라고 밥과 김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그리곤 점심때 또 밥에 김을 가지고 와선 날 먹이고 또 일을 하러 가셨다. 하루는 내가 할머니가 새벽에 나간다는것을 인지하고는 할머니가 나갈때 일어나서 할머니 다리를 붙잡고 할머니가지마. 라고 울었던 적이 있다. 왜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 방에 할머니와 내가 나란히 누워있다. 나는 그때보다 열다섯살 더 나이가 먹었고. 할머니는 열다섯살 더 나이가 들었다. 난 이제 할머니 보다 키가 커졌지만, 할머니는 15년 전 나처럼 키가 작아졌다.
내일은 부엌을 청소할 것이다.